“농약 사러 읍내까지 나가야?”…농업진흥구역에 농자재판매장 설치 허용해야
농지법 시행령에 명시 안돼 불법
별도 장소에 있어 농가 이용 불편
농협, 효율적 인력 운용도 차질
현실과 동떨어진 법 개정 절실
“여기서 농산물도 출하하고 택배도 보내고 심지어 돈도 찾을 수 있는데, 농약은 살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언제 또 읍내까지 나간답니까.”
농가가 원활하게 영농활동을 할 수 있도록 농업진흥구역에서 영농자재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현행 ‘농지법’은 농업진흥구역에서 농업생산 또는 농지 개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 이외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으로 허용되는 행위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를 비롯한 농기계수리센터·창고·퇴비장 등을 설치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영농자재 판매장은 농업진흥구역에 들어설 수 없다. 다른 농업시설과 마찬가지로 농가의 영농편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시행령상 영농자재 판매를 농업진흥구역 내 허용 행위로 명시하고 있지 않아서다. 이같은 문제로 농업진흥구역 안에 경제사업장이 있는 농협에선 영농자재 판매장을 기존 경제사업장과 떨어진 본점·지점에 두거나 아예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불편은 오롯이 농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경제사업장을 농업진흥구역에 두는 농협이 적지 않아서다. 농사일로 경제사업장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농민 입장에서는 한번에 농약·비료·포장재 등 농자재를 구매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강원 철원에서 쌀과 고추농사를 짓는 박창기씨(62)는 “한창 바쁜 영농철에는 경제사업장 한곳도 큰맘을 먹고 가는데, 농약과 비료를 사러 언제 다른 곳을 다녀오느냐”면서 “농민을 위한다면 필요한 서비스를 모아 한곳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금 같은 법은 농민을 못살게 구는 법”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농촌농협일수록 문제는 커진다. 농업이 활성화된 지역일수록 활용 가능한 토지 대부분이 농업진흥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읍내처럼 번화한 곳이나 아예 해당 지역 외곽에 판매장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여건과 맞지 않다는 게 지역농협의 하소연이다.
강원지역의 한 농협 경제상무는 “농번기에 트럭·트랙터로 대량의 영농자재를 가지러 오는 농민들의 수요를 감당하려면 못해도 주차 공간만 9917㎡(3000평) 이상이 필요하다”며 “시내에선 이같은 부지를 찾기도 어렵고 찾더라도 땅값이 비싸 영세한 농촌농협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농협이 본점 옆에 작은 공간을 두고 영농자재를 판매해 농가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기존 경제사업장과 떨어진 곳에 영농자재 판매장을 두게 되면 농협이 인력을 운용할 때도 비효율이 발생한다. 농자재를 판매할 땐 적절한 시비와 농약을 처방하기 위해 영농지도를 병행해야 하는데, 경제사업장에 있는 직원이 매번 멀리 떨어진 영농자재 판매장까지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탓에 농업진흥구역에 관한 규정이 오히려 농업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련 법을 조속히 개정해 농가의 영농활동에 불편함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채영 철원 동송농협 조합장은 “농업진흥구역에서 영농자재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건 다른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농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농가들이 농산물 출하부터 농자재 구매까지 한곳에서 할 수 있도록 ‘농지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원=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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